"외국인이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번 설날, 집에서 먼지가 살짝 쌓인 상자를 꺼내봤다.
그 상자 속엔 나의 추억이 깃든 녀석들이 가득했다.
이제는 이름도 가물거리는 사람들이 내게 보낸 편지들...
손으로 적은 편지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내가 쓰던 누군가에게 받든간에.
편지를 하나 하나 보면서 오랜 기억들을 꺼내어 본다.
89년이었나? 친구 한 녀석이 해외 펜팔을 하는 것을 보고 자극 받은 나.
승부욕이었는지, 낯선 외국인과의 대화가 부러웠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쨋든 나도 그 대열(?)에 합류를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Emiko Hara라는 낯선 일본 여자애로부터의 편지가 한통 왔다.
편지에 찍힌 날짜는 90년 8월이었던가?
이제 막 초등학교를 벗어난 꼬맹이였는데...
정말 글자 하나 하나가 딱! 중딩 수준이었을까?
어쨋든 나는 새로운 친구를 환영하며, 이렇게 저렇게 오랜 대화를 나눠갔다.
그 꼬맹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정말 글씨체도 세련되어지고 문장도 훌륭해져갔다.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_-;
지난 편지를 한통 한통 읽으며, 기억을 되살리려 했지만 그때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진 떠오르지 않는다. 10년도 더 흘렀자나.
어쨋든 에미코는 내 편지를 기다리고, 시시콜콜 자기 일을 얘기하고, 때론 사회적인 얘기까지 했다. KAL기 폭파했던 김현희 얘기와 일본인 북한에서 납치한 얘기까지 적힌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랬다. 이런 얘기까지 내게 썼었나? 나는 뭐라고 답을 했을까?
연락이 끊어지기전 당시 그녀의 편지 내용 중엔 내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종종 물어봤다.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감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문구에 "I love you" 라고 평소와는 달리 필기체로 적힌 것을 보게 되었다.
하트모양으로 접힌 별도의 편지지엔 그녀의 전화번호까지...
그 당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려웠을까? 설레여서 가슴이 쿵쾅 거렸을까?
나는 사랑했을까?
그녀의 편지는 93년 8월이 마지막이었다.
그 무렵 아마 해운대로 이사를 갔던 것 같다. 이사간 이후로 나는 편지를 적는다 적는다 하면서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 같다.
이젠 눈을 감고 생각을 해봐도 기억 속엔 그 느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일반적인 일본 여자같지 않고 귀엽고 착했는데...
지금은 뭘하고 있을까?
아마 결혼해서 애기 낳고 잘살고 있겠지?
그땐 다리가 좀 아파서 2차례 수술까지 했는데.
내겐 가벼운 수술이라구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까지.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고, 나는 과거를 한동안 잊고 살았구나.
예전에 나는 저렇게도 살았는데...
지금 그녀에게 편지를 적어볼까? 하고 머리를 긁적거린다.
하지만, 계속 그곳에 산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야.
그녀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쨋든 한번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우린 좋은 친구였으니깐...
구글이든 야후든 그 친구가 검색을 통해서 나를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과거 그녀가 살던 주소를 적어 놓으련다. 예전의 내 주소를 적어놔야 할까?
아~ 오늘도 아~~~무 이유없이 추억에 빠져서 허우적되는구나.
하지만 이 추억은 쓰레긴 아니자나. :)
Emiko Hara
2-7-7 Tsuruga-shi
Shinwa-cho, 914-01
Fukui-ken, Japan